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 스테파노 조약 (문단 편집) == 결과: [[베를린 회의]] 개최 == [[파일:산스테파노_베를린.jpg|width=800]] 산 스테파노 조약에 따른 각국의 영토 변화(왼쪽)와 [[베를린 회의]]를 통해 확정된 각국의 영토 변화(오른쪽) 전반적으로 러시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이었던만큼, 이 조약은 유럽 강대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. 특히나 [[그레이트 게임]]으로 전세계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이 산 스테파노 조약의 결과에 가장 기겁을 했는데,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흑해를 거의 완벽히 장악했고 러시아가 사실상 러시아 영향권에 든 불가리아의 지중해 항구를 지중해 진출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때문에 당시 영국 수상 [[디즈레일리]]와 외무장관 [[로버트 게스코인세실]]은 러시아에게 '당장 이 조약 수정 안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'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. 단순히 영국 뿐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프랑스, 독일,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강대국 모두가 [[러시아 제국|러시아]]에게 '너네 이 조약으로 너무 컸다?' 식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결국 러시아도 이에 굴복하여 발칸 반도에서의 세력 재조정을 위해 [[베를린 회의]]가 개최된다. 특히 오스트리아는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]]를 비롯한 발칸반도 일대에서 슬라브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것에 영국만큼이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. 알바니아인들이 상당수 거주하는 (현 영토 기준) 남부 몬테네그로와 동부 북마케도니아의 할양은 고조되던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[[알바니아인]]들의 위기감에 불을 지폈고 알바니아 민족주의 발흥의 주요 기점이라 평가되던 [[프리즈렌 동맹]]의 체결을 불러오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